🌱 농사 이야기

귀농을 결심한 이유 – 도시 직장인이 감자 농부가 되기까지

파파파팜 2026. 5. 14. 16:15

직장을 그만두게 된 계기

10년 가까이 서비스 외주 업체를 운영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직원도 있었고, 매출도 있었고, 명함도 번듯했습니다. 그런데 매년 반복되는 프로젝트, 줄지 않는 야근, 그리고 새벽 2시에 모니터 앞에 앉아 문득 드는 생각 — '이게 맞는 삶인가' — 그 질문이 해가 갈수록 더 선명해졌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였습니다.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도우러 내려갔던 어느 가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사과를 하나 건네셨습니다. 그 사과 한 알이 땅에서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화면 속 숫자가 아니라 진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감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이것저것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목별 수익성, 귀농 지원 사업, 토지 시세. 파면 팔수록 '농사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반년 뒤, 저는 폐업 신고서를 냈습니다.


왜 하필 감자였나

채소 농사 중 감자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씨감자를 심으면 별다른 기술 없이도 어느 정도 수확이 된다는 점, 저장성이 좋아 판매 기간이 길다는 점, 그리고 누구나 먹는 친숙한 작물이라 판로 걱정이 적다는 점.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감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는지는 첫해 바로 깨달았습니다.

역병, 발아 실패, 수확 타이밍. 감자는 심고 잊으면 되는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땅의 상태, 날씨, 병해충 — 변수가 끝이 없었습니다. '별다른 기술 없이도'라는 문장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만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매매한 730평 땅

귀농 준비에 걸린 시간

폐업 결정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 지원을 받으면서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처음엔 '진짜 이 길이 맞나' 하는 두려움이 컸지만, 지원 사업의 존재가 등을 밀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가 이 길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용기가 됐습니다.

귀농 교육

한국농수산대학교 진학과 온오프라인 기초 교육 100시간 이상을 이수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교육에서 얻은 실질적인 농업 지식보다 더 큰 수확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귀농인 네트워크'였습니다. 나보다 먼저 실패하고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 그게 어떤 교재보다 값졌습니다.

토지 준비

귀농 지역에서 730평 농지를 1억 3천만 원에 매매했습니다. 영농정착지원사업 5억 대출 중 일부를 활용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 '이제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싶었습니다.

생활 기반 정착

농지 인근 소도시에 임대 주택을 구했습니다. 첫해 생활비는 월 100~120만 원으로 최대한 절약해서 운영했습니다. 없애고 나니 없어도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첫해의 현실 — 낭만은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밭으로 나갑니다. 해가 중천에 뜰 때쯤 허리가 먼저 비명을 지릅니다. 저녁엔 유튜브로 농업 영상을 보다 소파에서 잠이 듭니다. 몸은 분명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유로웠습니다.

문제는 수익이었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첫해 수익은 기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도매로 납품하면 판로는 쉽게 열리지만 그만큼 마진이 얇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직거래 판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해보는 것이 지금 저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귀농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다만, 마라톤에도 페이스가 있듯이 — 저는 지금 제 속도를 찾아가는 중입니다.